제주도립미술관, 영화 동주 상영








오늘 포스팅 할 영화는 '동주'이다.

2019년 올해는 삼일절 100주년으로,

1919년 3월 1일, 삼일절,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을 기념하는 날이다. 우리 독립운동 하셨던 모든 분들, 또한 우리 나라를 져버리지 않았던 그때 당시의 모든 우리 국민들을 위해 잊혀서는 안 될 날이다. 

 내가 감히 말하자면, 이 영화를 모두 꼭 한번씩 봤으면 좋겠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도 평소에 이 분들을 의식 안하다가 삼일절, 광복절 이런 의미있는 날만 생각 했다. 오늘부터 계속 의식하고 생각하리라는 자신도 없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많은 반성을 하고, 특히 마지막 부분에 '송몽규'와 '윤동주'의 일본인앞에서 사인하면서 울분을 토해내는 장면은 나에게 있어서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멋있는 사람들이다.




'동주' 강하늘 "일본어 대사, 수능 때 보다 더하게 공부했다"





윤동주는 배우 강하늘이 연기했다.

윤동주는 시로 당시 시대에 맞선 사람이다. 시로 자기 반성과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 땅과 우리 국민들의 자유에 대해 울부짖음 등 많은 표현을 했다. 윤동주라는 사람을 강처중이란 친구가 소개한 글이 있다.

윤동주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지만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의 많은 부탁에도 절대 거절 않고 웃으며 다 들어주고, 때로는 돈을 빌려달라는 옹색한 친구들한테조차 자신이 돈이 없어도 시계나 외투든 내주고야 마음이 놓이는 그런 친구였다고 한다. 그러나 딱 한가지, 윤동주가 철저하게 거절하던게 있었다고 한다. 바로 자신이 쓴 시를 이부분은 고쳐보라는 말. "동주 자네 시 여기를 좀 고치면 어떤가" 하고 물으면 그는 응햐여 주는 떄가 없었다고 한다. 그만큼 자신이 시를 타인에게 보여줬을 때는 이것은 완성형이라고 한다. 옥이라고 한다. 고칠 데 하나 없는. 그렇게 윤동주는 자신의 시에 대해서 만큼은 확고했다.






 ì£½ëŠ”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동주>







송몽규는 배우 박정민이 연기했다.

나는 박정민이라는 배우를 몰랐다. 이 '동주'라는 영화에서 처음 알았다. 나는 이번에 박정민이라는 배우에게 반했다. 정말 빠져들고 진정성있게 연기했다고 느꼈다. 송몽규는 윤동주와 가까운 사촌지간이자 절친이었다. 윤동주는 조용하게 시를 쓰며 자신의 지금 현재 마음을 표현했다면, 송몽규는 물론 산문을 쓰고 글의 강함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송몽규는 행동력이 굉장히 강했다. 이것을 해야겠다 했으면 바로 실행했고, 리더쉽이 있는 사람이었다. 일본과 싸우는 것을 무서워 하지 않고 자신과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며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나서는 사람이었다.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이 장면은 송몽규가 일본군들에게 자신이 친구들과 모의하고 있는 것을 들켜서 새벽에 동주에게 지금 당장 떠나자고 2층 창문에 있는 동주에게 말한다. 그러나 동주는 내일 쿠미에게 자신이 외국에 출간한 시들을 전해줘야 했기에 송몽규에게 지금 못가고 내일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송몽규가 혼자 쓸쓸히 혼자 가는 장면이 나오며 영화에서 이 시가 들려온다. 자화상. 송몽규가 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가는데 이 자화상에 구절에 딱 맞는 상황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이 시를 윤동주가 쓰긴 했지만, 송몽규의 입장에서 썼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고, 다른 곳에서 봤던 시각은 윤동주가 송몽규를 질투해서 쓴 시라고 한다. 소극적인 자신에 비해 송몽규는 적극적이고 행동파였기에 그 점을 질투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아 이 때 송몽규는 혼자 고국에 돌아가려는 새벽길에 일본군들한테 잡혀 투옥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음날 윤동주는 쿠미를 만나 자신의 시들을 전해주고 이 시들의 제목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쿠미에게 쪽지로 남겨준 동시에 일본군에게 잡혀 투옥을 하게 된다.





20160501 영화 동주(DongJu : The Portrait of A Poet, 2015)






삶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들





윤동주와 송몽규가 투옥해서 일본인에게 심문받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송몽규는 사인을 하면서 하는 말이 있다. 사실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울었던 기억이 있다. 선진국인척 선한척 하는 일본군들에게 자신들은 정의롭고 우리 나라를 되찾으려는 학생들을 잘 못 되었다고 사인을 하라는 일본군들에게 울분을 토하며 사인을 한다. 이 장면은 잊어서는 안되는 한 장면이었다. 이 장면의 말들이 그대로 옛날 송몽규가 했을 지는 모르지만, 이 장면에서 송몽규의 나라를 사랑하지만 자신의 상황의 안타까움이 절로 묻어져 나온다. 나에게까지 미쳐왔다. 




시인이 되고 싶어 부끄럽다던 당신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부끄럼이 없다는 것. 과연 나도 부끄럼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지금 부끄럽다 많이. 이런 사람들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게. 부끄럼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일단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을 존재하게 해준 '송몽규', '윤동주'를 비롯한 많은 독립투사들을 아는게 먼저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내가 윤동주 시인의 시중 좋아하는 시 하나만 쓰겠다.




쉽게 쓰여진 시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




 '1945년 2월 16일, 윤동주 큐슈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옥사. 정확한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윤동주의 시신 인계를 위하여 당숙 윤영춘이 송몽규를 면회했을 때 "동주와 나는 계속 주사를 맞고 있다. 어떤 주사인지는 모른다."라고 말한 것과 48년 일본 전범재판 관련 문서 등을 미루어보아 혈장대체용 생리 식염수 실험 주사를 지속적으로 맞았으며 그로 인해 급사했다는 설이 유력함. 해수를 생리식염수로 바꾸는 실험이었기에 후쿠오카 앞 바다의 물을 주사한 것으로 추정.'


'1945년 3월 10일, 송몽규도 후쿠오카 감옥에서 옥사'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



 <동주>, 꼭 한번 모든 국민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

            나를 한번 더 돌아보게 하는 영화.

            내가 조금 더 성숙해졌다고 느껴졌을 때 한번 더 보고 싶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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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저의 인생영화 '동주'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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