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읽은 시집 '시로 납치하다'

엮은이 '류시화'

 

 요즘 시에 빠졌다. 책에는 자기계발, 소설, 수필, 시 등 많은 장르가 있다. 요즘 나는 시집에 손이 간다. 또한 시를 읽기 보다는 아침마다 시를 읊는다. 시를 읽을 때와는 다르게 시를 읊게 되면 더욱 내 가슴에 와닿는다. 내 것이 되는 느낌이다. 읽었을 때 느끼지 못한 가슴의 울림과 소름이 읊을 때 나에게 마구 다가온다. 시를 읊는다는 것 아름답고 매력적인 행위이다.

 시는 시인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쓰고, 독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읽는 문학이라고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집에 있는 해설과 내 느낀 점을 각 시마다가 아닌 마지막에 쓸 것이다. 그리고 이 것을 보는 사람은 이 시들을 읽기보다는 낭송해보면 어떨까. 하는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못할 수도

 

건강한 다리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시리얼과 달콤한 우유와

흠 없이 잘 익은 복숭아를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개를 데리고 언덕 위 자작나무 숲으로 산책을 갔다.

오전 내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오후에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누웠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은촛대가 놓인 식탁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못할 수도 있었다.

벽에 그림이 걸린 방에서 잠을 자고

오늘과 같은 내일을 기약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어느 날인가는

그렇게 못하게 되리라는 걸.

 

 

 

 

 

공기, 빛, 시간, 공간

 

 

'저에게는 가족도 있고 직장도 있었어요.

언제나 무엇인가가 내 앞길을

가로막았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집도 팔고

여기로 이사왔어요.

커다란 작업실로!

이 넓은 공간과 빛을 보세요.

내 생에 최초로 무엇인가를 창작할

시간과 공간을 갖게 된 거예요.'

 

 

그렇지 않아, 친구.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탄광 속에서 하루에 열여섯 시간을 일해도

창작을 해내지.

작은 방 한 칸에 애가 셋이고

정부 보조금으로 생활해도

창작을 해내지.

마음이 분열되고 몸이 찢겨 나가도

창작할 사람은 창작을 하지.

눈이 멀고

불구가 되고

정신이 온전치 않아도

창작을 해내지.

도시 전체가 지진과 폭격과

홍수와 화재로 흔들려도

고양이가 등을 타고 기어올라도

창작할 사람은 창작을 해내지.

 

 

이보게 친구, 공기나 빛, 시간과 공간은

창작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러니 변명은 그만둬.

새로운 변명거리를 찾아낼 만큼

자네의 인생이 특별히

더 길지 않다면 말야.

 

 

 

 

고독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되리라.

슬프고 오래된 이 세상은 즐거움을 빌려야 할 뿐

고통은 자신의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노래하라, 그러면 산들이 화답하리라.

한숨지으라, 그러면 허공에 사라지리라.

메아리는 즐거운 소리는 되울리지만

근심의 목소리에는 움츠러든다.

 

 

환희에 넘쳐라, 사람들이 너를 찾으리라.

비통해하라, 그들이 너를 떠나리라.

사람들은 너의 기쁨은 남김없이 원하지만

너의 비애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뻐하라, 그러면 친구들은 넘쳐 나리라.

슬퍼하라, 그러면 친구들을 모두 잃으리라.

 

 

너의 달콤한 포도주는 아무도 거절하지 않지만

인생의 쓰디쓴 잔은 너 혼자 마셔야 한다.

잔치를 열라, 너의 집은 사람들로 넘쳐 나리라.

굶으라, 스러면 세상은 너를 지나치리라.

성공하고 베풀면 너의 삶에 도움이 되지만

너의 죽음을 도와줄 사람은 없다.

환희의 전당은 넓어서

길고 화려한 행렬을 들일 수 있지만

좁은 고통의 통로를 지날 때는

우리 모두 한 사람씩 줄 서서 지나가야 한다.

 

 

 

 

 

그 겨울의 일요일들

 

 

일요일에도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검푸른 추위 속에서 옷을 입고

한 주 내내 모진 날씨에 일하느라 쑤시고

갈라진 손으로 불을 피웠다.

아무도 고맙다고 말하지 않는데도.

 

 

잠이 깬 나는 몸속까지 스몄던 추위가

타닥타닥 쪼개지며 녹는 소리를 듣곤 했다.

방들이 따뜻해지면 아버지가 나를 불렀고

나는 그 집에 잠복한 분노를 경계하며

느릿느릿 일어나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냉담한 말을 던지곤 했다.

추위를 몰아내고

내 외출용 구두까지 윤나게 닦아 놓은 아버지한테.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내가 무엇을 알았던가

사랑의 엄숙하고 외로운 직무에 대해.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결코 일상을 바꾸지 않는 사람

위험을 무릅쓰고 옷 색깔을 바꾸지 않는 사람

모르는 이에게 말을 걸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열정을 피하는 사람

흑백의 구분을 좋아하는 사람

눈을 반짝이게 하고

하품을 미소로 바꾸고

실수와 슬픔 앞에서도 심장을 뛰게 하는

감정의 소용돌이보다

분명히 구분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일과 사랑에 행복하지 않을 때

상황을 역전시키지 않는 사람

꿈을 따르기 위해 확실성을 불확실성과 바꾸지 않는 사람

일생에 적어도 한 번은 합리적인 조언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삶의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

자기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자존감을 파괴하고 그곳을 에고로 채운 사람

타인의 도움을 거부하는 사람

자신의 나쁜 운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에 대해

불평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는 사람

알지 못하는 주제에 대해 묻지도 않고

아는 것에 대해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 사람은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람이다.

 

 

우리, 서서히 죽는 죽음을 경계하자.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는 행위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필요로 함을 기억하면서.

 

 

 

 

 

동사  '부딪치다'

 

 

 

어느 날 아침

텔레비전 화면에 나온 한 명의 여성

일본 최초의 맹인 전화교환원

 

 

그 눈은 바깥세상을 흡수하지 못하고

빛을 밝게 반사시키고 있었다.

몇 해 전 실명했다는 그 눈은

 

 

사회자가 그녀의 출퇴근 모습을 소개했다.

'출근 첫날만 어머니의 도움을 받았고

그 후로는 줄곧 혼자서 출퇴근하고 있다고 합니다.'

 

 

'근무를 시작한 지 오늘로 한 달

편도로 거의 한 시간 동안 만원 전철을 타고......'

그리고 물었다.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기 힘드시죠?'

 

 

그녀는 대답했다.

'네, 힘들긴 하지만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걷기 때문에

그럭저럭.......'

 

 

'부딪치면서...... 말인가요?'라고 말하는 사회자

그녀는 미소 지었다.

'부딪치는 것이 있으면

오히려 안심이 되는 걸요.'

 

 

눈이 보이는 나는

부딪치지 않고 걷는다.

사람이나 물체를

피해야만 하는 장애물로 여기며.

 

 

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부딪치며 걷는다.

부딪치는 사람이나 사물을

세상이 내미는 거친 호의로 여기며.

 

 

길 위의 쓰레기통이나

볼트가 튀어나온 가드레일

몸을 난폭하게 치고 지나가는 가방

울퉁불퉁한 보도블록과 조바심 내는 자동차의 경적

 

 

그것들은 오히려

그녀를 생생하게 긴장시키는 것

친근한 장애물

존재의 촉감

 

 

부딪쳐 오는 모든 것들에 자신을 맞부딪쳐

부싯돌처럼 상쾌하게 불꽃을 일으키면서

걸어가는 그녀

 

 

사람과 사물들 사이를

눅눅한 성냥개비처럼

한 번의 불꽃도 일으킴 없이

그냥 빠져나가기만 해 온 나

 

 

세상을 피하는 것밖에 몰랐던

나의 눈앞에 갑자기 나타나

세게 부딪쳐 온 그녀

 

 

피할 겨를도 없이

나가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은 나에게

그녀가 속삭여 주었다.

부딪치는 법, 세상을 소유하는 기술을.

 

 

동사 '부딪치다'가 그곳에 있었다.

한 여성의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그녀의 주위에는

물체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눈짓 한 번에 곧바로 노래를 부를 것처럼

다정한 성가대처럼.

 

 

 

 

 

솔직한 후기

 

 

 이 시집에는 시가 쓰여 있고 그 다음장에는 류시화 시인의 시에 대한 해설이 쓰여 있다. 그래서 읽어보면 시인들의 삶과 생활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도 볼 수 있구나 하면서 신기하다. 시는 뒤로 갈수록 나에게는 와닿지 못하는 시들도 많았다. 현재 이만큼 성장한 나에게는 읽힐 수 없는 시였을지도 모른다. 저만큼 성장한 내가 다시 한 번 읽었을 때 그때야 비로소 읽히는 시들이 또 몇 개 더 있을 것이다. 이 시들에게는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우리의 삶, 죽음, 사랑 등등 나는 요즘 '죽음'이라는 것이 너무 무섭다. 내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린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다. 죽고 어디로 갈지 아무도 나에게 가르쳐주지 못하고 나조차 알지 못하기에 두려운 것이다. 이 시에서 나오는 해설에 이러한 말이 있었다.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첫 날' 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시간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에게 조심하고 친절하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4어절 '누군가가 죽은 다음에 첫 날'이라는 말에 주목했다. 그리고 한번 생각했다. 내 주변에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때는 어떤 마음이 들까? 이 사람이 이제 내 곁에 없다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신기함, 그리움, 슬픔. 또 나도 존재하지 않아질 것이라는 두려움, 그 다음 날도 세상은 평온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나오는 허무함. 많은 감정이 오갈 것이다. 어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아무 의미 없고 허무한 지금 내 인생, 삶에 대하여 고뇌와 고찰하는 나. 이러한 생각들이 시를 읽으며 더 깊어지고 더 넓어진다. 시에는 자기계발 책보다 더한 자신을,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깊은 울림이 있다.

 시를 읊는다는 것, 삶을 노래한다는 것, 죽음을 노래한다는 것.

.

.

.

.

.

.

.

.

.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