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대에 있을 시절에 호기심으로 책을 몇 권 읽은 적이 있다.

그중에 오늘 포스팅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었었는데,

내용은 잘 기억이 안났지만 되게 재밌었던 기억이 났었다.

그런데 몇일전에 서점에 갔더니 이 책이 떡하니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더 읽고싶다 라는 마음에 집어 들었고

곧바로 구입해 한번더 읽어 보았다.

사실 내가 요즘 알랭드 보통이라는 작가에 꽂힌 것도 사실이다.

'키스하기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도 읽었고,

또 어제 택배로 온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도 읽을 예정이다.

이 작가는 철학적이면서 종교적이면서 사랑에 대해서도 멋있게? 때로는 사실적으로

무섭게도 다가와지게 묘사를 잘해준다.

 이 책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첫만남부터 사랑해서 이별까지 마지막에는 다시 사랑에 빠지기까지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한 연인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책 표지는 이렇게 생겼다.


차례를 살펴보자면,













 이렇게 이루어져있다.


책의 첫 페이지에는 이런 의문으로 시작된다.


'삶에서 낭만적인 영역만큼 운명적 만남을 강하게 갈망하는 영역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잠자리를 함께하는 일을 되풀이하는 상황에서,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남자나 여자와 만나게 될 운명이라고 믿는다면 용서받지 못할까? 만에 하나 하늘이 우리를 가엾게 여겨 우리가 그리던 왕자나 공주를 만나게 해준다면, 그 만남을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치부해버릴 수 있을까? 한 번만이라도 논리에서 벗어나서 그 만남이 우리의 낭만적 운명의 징표라고 해석할 수는 없을까?'

 나는 항상 생각한다.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이 언젠가는 나타나지 않을까? 라고, 나에게 부끄럼없이 생활하고, 일하고, 좋은 사람들과 같이 우정을 나누다 보면은 운명적인 사람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고


 처음에 이 책의 화자와 '클로이'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다. 클로이는 여주인공이며 전시회에 참석하느라 파리에 다녀오는 길에 비행기를 탔고 그녀는 패션 잡지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스물셋의 여자이다.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화자는 여자에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화자는 생각한다. 내가 이 비행기를 탈 확률과 여자가 같은 비행기를 탈 확률, 그리고 같이 이코노미 석에 타고 같은 옆자리에 탈 확률, 하필 이 시간 비행기에 탈 확률 등을 계산하며 운명이라 믿는다. 아니 필연이라 믿는다.


'우리가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결국 우연일 뿐이라고, 989,727분의 1의 확률일 뿐이라고 느끼게 되는 순간은 동시에 그녀와 함께하는 삶의 절대적 필연성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 즉 그녀에 대한 사랑이 끝나는 순간이기도 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사랑을 낳을까, 아니면 사랑이 아름다움을 낳을까?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할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다울      까?'


 이 구절을 보고 생각해봤다. 이런 질문에는 답이 없기에 나는 이렇게 받아들였다. '클로이가 아름답기 때문에 내가 그녀를 사랑하고, 내가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가 아름답다' 라고.










 '윌(화자의 친구)은 신중하게도 클로이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지 않고, 더 정확하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느냐 고 물었다.'


 정말 예쁜 말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이지?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지? 라는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보려면 어렵지만, 내가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 말하려면은 사소한 것까지 다 알 수 있다. 오늘 하루만 만나도 보이는 것을 말하라고 하면 무수히 많이 말 할 수 있다.











 '나는 그녀의 사소한 동작에서도 매력을 느꼈다. 무든 것을 그녀가 완벽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거의 모든 것을 보았다.


 윌의 질문 전에 나온 이야기지만, 이것을 윗 질문에 대한 화자의 대답이라고도 볼 수 있다.

나는 그녀에게서 모든 것을 보았다 고 답을 한 것이다.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정말로 저 여자 일까? 나는 건너편 소파에 앉아서 잡지를 읽고 있는 클로이를 다시 보며 생각한다.'










'그녀는 "절대" 라는 말 대신 꼭 "두 번 다시" 라는 말을 사용했으며, 전화를 끊기 전에는 "몸 조심해" 라고 인사를 했다. 반대로 그녀는 나의 "완벽해" 라는 말과 "니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라는 언어습관을 익혔다. 나도 클로이처럼 침실에서는 완전히 불을 끄게 되었고, 그녀는 나처럼 신문을 접게 되었다. 나는 무슨 생각을 할 때에는 소파 주위를 뱅뱅 돌게 되었으며, 그녀는 카펫 위에 눕는 것에 맛을 들였다.'


 서로 사랑하면서 추억을 쌓아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방의 언어 습관도 알게 될 것이고, 그 사람의 생활 습관도 알게 될 것이고, 많이 마주 할 것이다. 그 사람과 많이 닮아진다. 물론 언어습관도 마찬가지다. 서로 친밀감이 쌓이며 서로 더욱 사랑하고 있기에.

 작가는 이렇게 서로 사랑이 커지고 있다는 것을 세세하게 독자에게 확 안겨준다.




 






'우리는 가끔 침묵의 시간을 가지는 모험도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편집증적인 수다쟁이들, 고요가 배신처럼 보일까봐 대화를 중단하기를 꺼리는 수다쟁이들이 아니었다. 우리는 상대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런 믿음이 없을 때 생기는 두려움에서 발생하는) 지속적인 유혹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다.'



 친한 친구와도 그렇듯 서로간의 신뢰관계가 있으면 아무말 하지 않아도 편하다. 어색하지 않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속으로 생각을 쥐어짜지 않는다. 불안하지 않기 때문에. 화자와 클로이는 이런 신뢰관계가 커지며 더욱 관계가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클로이와 화자가 만난지 얼마 안됬을 때 이런 구절이 있다. '침묵은 저주스러웠다. 매력적이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것은 상대가 따분한 사람 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매력적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둘 다 입을 다물고 있으면 따분한 사람은 '나 자신'이 되고 만다.' 신뢰관계가 없던 때는 이렇게 침묵을 저주스러워 한다. 










'어쩌면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보아주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다는 것도, 본질적으로 우리는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난 이 부분이 정말 좋다. 사랑을 받기 전에는 온전하게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사랑만큼 위대한 것도 없고 행복한 것도 없고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 좋은 말이었다.



 화자는 이렇게 사랑을 하다가도 마음의 동요, 즉 클로이에게 무뎌지며 다른 여자와의 스킨쉽등을 생각하기도 하고 클로이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도 생각하게 된다. 권태기라고 부르면 될까?










'사랑의 종말과 삶의 종말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후자의 경우에는 그래도 죽음 뒤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위안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계의 끝이 반드시 사랑의 끝은 아니며, 더군다나 삶의 끝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아는 연인에게는 그런 위안이 없다.'










' "나는 너를 사랑한다" 는 말은 늘 "지금" 그렇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는 클로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말은 시간의 구속을 받는 약속이었다.'

 

 클로이는 자신의 친구 엘리스를 소개시켜주면서 화자에게 말한다. 분명 엘리스에게 사랑에 빠지게 될 것이라고, 결코 아니다라고 단언하던 화자는 엘리스를 보며 스킨쉽을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하며 상상으로는 일탈을 꿈꾼다. 헤어지고 나서 클로이는 화자에게 묻는다. 엘리스에게 사랑에 빠지게 됐냐며.










'오늘은 이 사람을 위해서 무엇이라도 희생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몇달 후에는 그 사랑을 피하려고 일부러 길 또는 서점을 지나쳐 버린다는 것은 무시무시 하지 않은가. 나는 클로이에 대한 내 사랑이 그 순간의 나의 자아의 본질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녀에 대한 내 사랑이 한시적인 것으로서 끝을 맺는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일부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화자는 이별을 한다는 것은 이별을 하기 전 내가 클로이를 사랑한 그 기간동안의 내 자아는 일부 죽는다고 말한다.
















 '나는 클로이를 사랑할지 모르지만, 그녀를 알기 때문에 그녀를 갈망하지는 않는다.'


 내가 전에 읽었던 '하버드 사랑학 수업'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먼저 상대를 아무리 잘 안다 해도 그를 다 알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를 여전히 호기심을 자아내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한다. 사귀고 시간이 몇개월, 일년, 몇년이 지나면 나는 이 사람을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질려하고 권태롭고 새로운 사람을 찾게 되고 한다. 자기 자신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남을 다 알 수 있을까? 하지만 이 과정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화자의 저 마음도 공감이 간다.












'나는 그녀의 짜증을 돋우는 존재가 되었다.  상대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클로이의 마음이 화자로부터 떠나간 후 이다.

너무너무 슬프다. 나는 그녀의 짜증을 돋우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 그리고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모욕을 줘도 상대의 반응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 즉 상대방이 나에게 마음을 떠난 것을 알고서도 나는 그것에 반응하지 않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는것, 그래서 나는 더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











'일은 희비극의 시나리오로 풀려나갔다. 한편에는 여자를 천사와 동일시하는 남자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사랑을 병과 동일시하는 천사가 있었다.'












'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은 왜 너는 나를 사랑하는가 하는 질문만큼이나 대책 없는 질문이다.'











위에 대화를 보면 남자는 대화로 해볼려고 하지만

여자는 대화를 할 생각이 없다.










'일단 한쪽이 관심을 잃기 시작하면,  다른 한 쪽에서 그 과정을 막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상대에게서 평화적인 수단으로 유혹해내지 못했던 양보를 힘으로써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그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나오는 것. 이것을 테러리즘이라고 화자는 말한다. 좀더 강력한 적을 만나 자신의 무능을 알게 될 때 드러내는 분노.


즉, 나에게 마음이 떠난 사람에게 구애하며 관계를 회복하려 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미동도 없으니 상대방에게 질투를 유발하려고 한다거나 화를 낸다거나 더 자주 연락 한다거나(상대방이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한다는 것을 테러리즘에 빗대어 표현했다. 이것이 '낭만적 테러리즘'이다.



 화자와 화자의 친구 '윌', 그리고 클로이 세명이서 한 자리에서 술을 먹다가 화자는 집으로 먼저 들어가고 남은 클로이와 윌은 다른 곳에서 술을 더 먹다가 들어간다고 했다. 그런데 화자의 연락을 안받고 클로이는 다음 날 친구의 집에서 잤다고 화자에게 말을 한다. 화자는 알았다. 윌과 클로이가 하룻밤을 보냈다는 걸. 추측이었지만 그것은 확신이었다. 나에게 마음이 떠난 것을 안 화자는 계속 노력을 한다. 밥도 사고 이벤트도 하고 여행도 가고, 그러나 그것은 혼자만 비참해질 뿐이었다. 나중에 클로이는 울면서 고백한다. 그 날 윌과 함께 있었고, 지금 윌과 좋은 감정이라고, 윌이 사는 캘리포니아로 갈 예정이라고, 미안하다고, 사랑했다고 고백한다. 끝났다. 사랑은 이렇게.

 그리고 화자는 자살 시도를 한다. 약을 엄청 입에 넣고 거품이 일었지만, 나중에 보니 비타민이었다고 한다.  결국 마지막에는 디너파티에서 만난 '레이첼'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며 이 책은 끝이 난다. 


사랑이 시작되고 끝나는 과정까지 세세하게 다뤄준 이 책의 제목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이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하고 생각해 봤다. 이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연애의 구조에서 우리가 의식적인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부딪힌다.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우리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받을 자격도 없는 우리에게 선물로서 주어졌다는 사실에 부딪히게 된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이유가 없다. 이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왜 좋아할까? 도대체 왜?라고 의문을 품어봐도 알 수 없다. 이성적으로 통제가 안되는 감정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냥 사랑에 빠지는 것이다. 이유 없이.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사랑에 대해 다시 한번 사랑을 생각해 봤다.

나의 아는 형(내가 평소에 좋아하는 멋있는 형) 은 이렇게 사랑을 말하더라.

'내 사랑은 나의 기준이 되는것, 그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그사람이 행복하면 나는 행복하다.'

라고 말했다. 정말정말 공감되는 말이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나의 전부를 희생하며 나를 없애면서까지 사랑하면 상대방이 사랑할 내가 없기에 나를 먼저 사랑하고 다음에 상대방을 사랑해야 한다고, 즉 자존감이 높아야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책에서 말한다. 물론 나도 이 말이 매우 맞다고 생각한다. 이 사실을 알며, 자존감도 높은 사람은 나는 성숙하다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성숙한 사람조차도 진짜 사랑을 하게 되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지 않을까? 이 사람에게 나를 없애면서까지 모든 것을 주고 싶고 희생하고 싶은 자존감이 낮았다고 생각하던 과거의 어린 '나'로 말이다.'


한마디로 '성숙한 사람이 아이가 되는 것' 

이것이 사랑 아닐까?


.

.

.

.

.

.



이상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서평과 나의 사랑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요즘 영화에 갑자기 또 빠져가지고

영화 포스팅도 많이 하려고 생각중입니다.

이번주에 영화 5개는 본듯하네요ㅎㅎ

제가 다른 포스팅에 비해 이 서평에 많은 애정을 쏟아 붇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시간이 엄청 걸리네요ㅎㅎㅎ

그래도 열심히 적었으니까 혹시나 다 보신 분이 있다면 정말정말 감사드립니다.

+ Recent posts